본문 바로가기

재테크,경제

책으로 역사와 경제공부 "돈의 역사"

홍춘욱 박사님의 저서 "돈의 역사"

 경제공부는 해야겠고 기초가 너무 부족했던 터에 그나마 역사와 함께 공부를 하면 흥미를 느끼며 꾸준히 공부를 지속할 수 있겠단 생각에 구입한 책이다. 저자는 홍춘욱 박사란 분이신데 이력이 화려하신 듯하다. 원래는 연세대 사학과 출신인

데 대학원을 고려대 경제학과 에서 마치고 명지대에서 경영학 박사학위를 취득하셨다. 책은 350여 페이지가 되는터라 며칠 상간에 완독 해보려 했지만 해당 기초지식이 많이 부족해 진도를 얼마 못 나가 실패했다. 그래서 이 책은 단기간에 빠르게 읽기보단 차근차근 반복하며 경제의 기초를 닦는다는 마음으로 읽기로 했다.

 

 이 책은 크게 7부로 나눠져 있는대 그 첫 번째 1부 타이틀이 '전쟁에 이기기 위해서는 더 많은 돈이 필요하다!' 이다. 과거 각국의 전쟁을 다룬 듯한데 아무래도 전쟁이란 게 과거 나 지금이나 군수물자를 조달하기 위해선 막대한 자금이 필수인 것 같다. 1부의 첫 번째 장이 영국과 프랑스의 트라팔가르 해전을 다뤘다.

 

트라팔가르 해전 1805년

 시대배경은 19C초 나폴레옹이 이끄는 프랑스가 유럽의 패권을 장악하던 시기이다. 이 당시 영국이 프랑스의 유럽 대륙 지배에 대항하기 위해 유럽 각 국가와 군사동맹을 체결 주도했던 것 같다. 이 당시 수차례 전쟁 중에 영국 해군의 존재감

이 단연 돋보였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이 영국 해군을 이끄는 명장이 '넬슨 제독' 이라는 사람인데 우리나라의 '이순신 장군'에 해당하는 인물이다.

 

 그럼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어떻게 영국이 이런 막강한 해군을 육성할 수 있었는가?'이다. 당시 프랑스는 영국과 비교

했을 때 인구수도 월등히 많았으며 해군 육성에 필요한 경제력도 있었을 뿐만 아니라 1780년대 말 국민 총생산이 영국의

2배였다. 해군력 확충에 투입할 수 있는 '재원' 측면에서 보면 프랑스가 월등히 유리한 조건이었다. 이것은 프랑스가 국지적 전투에선 지더라도 결국 승리자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책에서는 1688년 영국의 명예혁명을 그 이유로 꼽고 있다. 

 

p21 명예혁명을 기점으로 영국의 국채금리가 급격히 하락해 프랑스 등 적대적인 나라와의 경쟁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

었다는 것이다. 명예혁명 이전에 금리가 높았던 건 당시 영국 왕실(스튜어트 왕가)이 빈번하게 '채무불이행'을 했기 때문

이다.

 

영국국채금리 추이

p22 영국 금리는 17세기 후반까지만 해도 10% 혹은 15% 이상의 수준이었다. 영국 금리가 이토록 높았던 건 이자 및 원금의 지급이 빈번하게 정지되어 '위험 프리미엄'이 높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명예혁명 이후 영국 금리는 크게 떨어졌으며, 1980년을 전후해 세계적인 인플레가 발생하기 전까지 10% 이상 수준으로 다시는 올라가지 않았다.

 

 1688년 영국 시민들은 명예혁명을 일으켜 국왕인 제임스 2세를 내쫓고 영국 의회는 네덜란드의 오렌지 공 윌리엄을 새로운 국왕으로 앉혔다. 새로운 국왕인 윌리엄 3세는 혼자 오지 않았다. 혹시 모를 반대파에 대항하기 위래 1만 4천 명의 군사를 대동하고, 수만 명의 기술자와 금융 인력을 데려왔다. 사람과 더불어 네덜란드 사고방식과 금융제도까지 영국에 들여온 것이다. 영국 귀족과 자본가들의 반감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네덜란드 금융'은 대세로 굳어졌다.

 

 이 변화에 금융 시장이 가장 먼저 반응했다. 1690년까지만 해도 10%에 거래되던 영국 국채금리가 1702년 단번에 6%

로 떨어졌다. 특히 1755년에는 2.74%를 기록해, 어떤 경쟁 국가도 꿈꿀 수 없었던 저금리로 자금을 조달할 수 있게 되었

고, 이는 영국 해군과 육군의 전력 상승으로 이어졌다. 거대한 함대를 건설하는 것은 물론, 실제 화약을 이용해 실전에 가

가운 훈련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다른 나라는 전쟁이 시작된 후에야 훈련을 시작했지만, 영국군은 이미 실전에 가까운 훈련을 받고 전쟁터에 나섰기에, 적어도 전쟁 초반에는 밀리는 일 따위는 없었다. 반도 전쟁에서 프랑스군을 패퇴시킨 웰링턴 공작의 사례처럼, '보급으로 이기는' 영국군의 신화는 이때 만들어졌다.

 

 프랑스가 스페인 백성들을 약탈해 식량을 보충할 때, 웰링턴 공작이 이끄는 부대는 빈곤의 구렁텅이에 떨어진 스페인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주면서 게릴라전의 늪으로 프랑스군을 끌어들일 수 있었던 것이다.